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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LA의 뜨거운 위로, 설렁탕·곰탕 역사

한국인의 소울푸드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설렁탕과 곰탕은 단순한 국밥을 넘어 역사가 담긴 뜨거운 위로다.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설렁탕은 조선시대 임금이 백성을 위해 풍년을 기원하며 밭을 갈던 선농단(先農壇) 제례 후, 참여자들에게 소를 잡아 끓여 나누어 주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선농탕’이라 불리던 것이 변음되어 ‘설렁탕’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반면 곰탕은 ‘고음탕(膏陰湯)’에서 유래했다는 설처럼, 고기와 뼈를 오랫동안 ‘고아’ 만든 국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곰탕의 ‘곰’이 푹 삶는다는 뜻의 순우리말 ‘고다’에서 왔다는 해석도 있다.   전통적으로 설렁탕은 소의 사골, 도가니, 잡뼈 등을 푹 고아내 뽀얗고 탁한 국물이 특징이며, 여기에 양지 등 고기를 함께 넣고 국수 사리와 수육을 곁들여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곰탕은 사태나 양지 등 고기 위주로 맑게 끓여내는 것이 정석이며, 수육이나 양, 곱창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맑고 개운한 국물 맛이 곰탕의 매력이다.   하지만 바다 건너 이역만리, LA 한인타운에서는 이 엄격한 경계가 자주 무너진다. 어쩌면 이것이 디아스포라 한식의 자연스러운 변주이자 미학일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예가 ‘영동설렁탕’이다. 육안으로는 맑은 국물의 곰탕에 가깝지만, 내용물은 설렁탕 재료에 충실하다. 이곳에서는 주전자에 담긴 깍두기 국물을 기호에 맞게 부어 넣어, 맑은 국물에 깍두기 특유의 시원함과 감칠맛을 더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풍미를 완성한다.   ‘설가 진주곰탕’ 역시 명칭은 곰탕이지만, 사골을 고아낸 듯 뽀얀 국물과 푸짐한 고기 구성은 영락없는 설렁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상호 앞의 ‘설가(雪家)’가 눈(雪)처럼 뽀얀 국물을 의미하거나 설렁탕(雪濃湯)에서 힌트를 얻은 것일까 추측해보지만, 설렁탕과 곰탕의 구분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최근에는 사골을 함께 넣어 끓인 ‘사골곰탕’까지 등장하며 이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라스베이거스의 명소로 꼽히는 ‘이조곰탕’ 역시 뽀얀 국물에 다양한 고명을 얹어 설렁탕 같은 곰탕을 선보인다. 결국 국물의 색이든, 내용물이든, 명칭은 업주의 철학과 선택에 달려 있다 하겠다.   LA에서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랑받는 터줏대감은 단연 ‘한밭설렁탕’이다. 한국에서 들여온 무쇠솥을 2대째 고수하며 일정하고 깊은 국물 맛을 유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프림을 탄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의혹이 나올 정도이지만, 그 중독성 강한 맛에 매주 수차례 ‘출근 도장’을 찍는 단골이 부지기수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넉넉한 파 인심이다. 테이블마다 비치된 통에서 파를 마음껏 퍼 담아 ‘파죽’처럼 즐기는 재미는, 요즘 ‘금파’ 시세에 괜히 사장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게 하면서도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한다.   최근 한밭 대신 발길을 옮겨 흔들린 곳은 ‘착한설렁탕’이었다. 뽀얀 듯 맑은 국물에 MSG 없이도 깔끔하고 개운한 맛, 구운 소금과 달큰한 깍두기, 아삭한 겉절이의 조화가 일품이다. 김치 국물 없이도 그대로 완탕할 수 있는 맑은 국물은 마치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 육수를 떠올리게 한다. 쌀국수와 설렁탕 국물 제조 과정의 유사성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 흥미로운 미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웨스턴 길의 ‘전통설렁탕’ 역시 이름처럼 오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보기 드문 곳이다. 상가 개발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어머니에 이어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맛있으면서도 달착지근한 깍두기 맛은 한밭설렁탕과 비견될 만하다.   시설 면에서는 ‘해마루’가 단연 앞선다. 입구의 대형 가마솥 4개에서 24시간 국물을 우려내며 대규모 손님에게도 일관된 맛과 위생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설렁탕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한 곳이다.   최근 타운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곳은 6가에 위치한 ‘선농단’이다. 과거 다른 메뉴로 인기를 끌었던 이곳이 웨스턴가에 2호점을 24시간 영업으로 열면서 설렁탕 전문점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대부분의 설렁탕집이 쪽파를 쓰는 것과 달리 대파를 사용하는 점, 정구지무침, 오징어젓, 와사비 양파장 등 기본 찬 외의 다양한 곁들임 메뉴, 그리고 오전 할인($11.99)까지 경쟁력을 갖췄다. 이른 시간 어르신들의 조찬 모임 장소로도 인기가 높아 당분간 설렁탕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설렁탕과 곰탕. 그 명칭과 스타일은 시대와 지역, 그리고 업주의 해석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그 한 그릇의 뜨거운 국물이 주는 깊은 위로와 든든함일 것이다. LA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혹은 낯선 일상에 지칠 때, 익숙하거나 혹은 새롭게 변주된 설렁탕/곰탕 한 그릇이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미학은 변치 않을 것이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설렁탕 곰탕 설렁탕과 곰탕 설렁탕 국물 설렁탕 전문점

2025-05-1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나홀로 키를 잰다

나홀로 키를 잰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 때문에 자괴감에 빠진다. 모든 것이 공평하고 높낮이가 없으면 잘 났다는 착각도, 무시 당한다는 비참한 생각도 들지 않을 것이다.     자괴감은 자신을 낮추고 자책하는 대 비해 우월감은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낫다고 생각하는 감정이다.     도토리는 키 재기를 안 하지만 사람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키 재기 한다. 네 콩이 크니 내 콩이 크니 하고, 참깨가 길다느니 짧다느니 치수를 잰다.     월등하게 뛰어난 사람에겐 기 죽어 꽁지를 낮추지만, 서로 비슷한 수준이거나 정도가 고만고만 하면 깔고 뭉개서라도 고지 탈환을 꿈꾼다. 졸부는 졸부끼리, 못난 사람은 못난 사람끼리 키 재기 한다. 진짜 부자는 키 잴 필요가 없다. 가만히 있어도 부자 티가 난다.   개똥철학의 달인이신 어머니는 오빠가 동네 애들과 싸우면 종아리를 때렸다. “싸움은 위를 쳐다보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배울 것이 있다.”며 끼리끼리, 비슷한 수준끼리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은 쓸모가 없는 시간 낭비라는 깊은 가르침이다.   나이 탓인가. 해가 바뀌자 방송이나 유튜브에 나오는 새해 운수에 귀를 쫑긋 세운다.     마음에 송송 구멍이 난 때문일까. 몇 주째 한파에 눈과 비가 쏟아져 태양 본 적 없어 우울증에 걸렸나. 가슴 떨리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 찬란했던 청춘의 날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절망,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오늘을 지키기도 힘들다는 무기력함, 어떤 사람들에겐 사는 것이 죽는 것만큼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리저리 시작도 꼬리도 없는 불안한 생각에 젖어 새해 한 달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하릴없이 집구석을 돌아다녔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단편소설의 대가 현진건 ‘운수 좋은 날’의 명대사다.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으로 살아가는 김첨지는 열흘 넘게 돈 구경을 못한다. 아프다며 나가지 말라는 아내를 뿌리치고 집을 나선 김첨지는 많은 손님을 받아 큰 돈을 벌지만 내내 불안감에 시달린다. 집에 들어가기 불편해서 선술집에서 친구 만나 술을 마시고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했던 설렁탕 국물을 사 들고 집을 들어서는데 아내는 죽어 있다.     김첨지는 운명에 얽매어 산다. 가난과 질병, 하층계급의 비극적인 삶은 돈으로도 극복이 안 된다. ‘행운의 상승과 함께 불운의 상승’이라는 대립병치구조를 통해 우리들이 가장 행복했던 날에도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온다는 섬뜩함이 도사리고 있다.   할 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시작조차 두려운 공포에 시달린다. 20년 넘게 쓴 칼럼 정리해 출판사에 보내야 하고, ‘Color is My Life’ 자서전 집필, 전시회 준비도 해야 하는데 한 달째 땅 집고 허우적거린다. 개구리 헤엄치며 아무리 용을 써도 물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내 코가 열자면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쓸 것은 많은데 쓰지 못하고, 그릴 것은 많은데 물감을 입히지 못한다. 피노키오처럼 거짓을 입에 달고 살 수 없다.     거인들 앞에 서면 여전히 난장이다. 봉우리가 똑같이 높은 산은 없다. 스스로 키를 잴 시간이 왔는지 모른다. 갈 길이 높고 험한데 멈춰 서서 타인과 키 재기를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더 이상 애창곡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를 부르며 못다한 사랑의 편린을 그리워하지 않겠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도 어디까지 날아가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생각 때문 새해 운수 설렁탕 국물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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